휴식이 있는 곳

한국불교 중흥도량 용문사(양평)

열두 번째 여행 : 용문사 템플스테이

작성일 2018-01-20 오전 11:47:20 | 작성자 용문사(양평) | 조회수 1626

디지털 시계가 찰칵 찰칵 시간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는 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간은 그저 강물이 흐르듯 흐르는 것이란 것도.

새해 첫 아침의 해도 사실은 어제의 그 태양과 같은 것이어서
떠오르고 지고 또 떠오르고 지는 그 길 위에 계속 있는 것이다.

한 해의 끝을 썩뚝 잘라내어 버리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망년회에서 술을 퍼마시고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깨닫곤 하지 않던가.




한 해의 마지막 날과
한 해의 첫 날을
조용한 곳에서 잇고 싶었다.

물레에서 자아낸 실을 잇듯이
올해의 끝 날과 새해의 첫 날을 이어,
씨실과 날실을 베틀에 얹어 천을 짜듯이
아른아른 결이 살아있는 삶을 짜야겠기에.

지난 달에 용문사에 다녀오며 눈여겨 봐둔 템플스테이.
전철로 한 시간 거리라는 것도 부담이 없었다.
상봉역에서 붐비던 전철 안은 금새 한가로워졌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가 한 명도 없이
차창 밖이 그대로 풍경화여서 감상하며 가는 길.




용문역 앞에 식당이 몇 있다.
입산 전 점심으로 고른 메뉴는 들깨메밀수제비.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것을 고스란히 뱃속에 넣으니
온 몸이 다 훈훈하고 든든했다.




지난 달 용문사에 왔을 때  스며들고 파고들 자리를 걱정했던 생명들은
흰 눈이 쌓인 계곡의 깊은 자리로 잘 깃들었으리라.
깊은 겨울잠 속에 새 봄을 꿈꾸리라.




절에서 먹고 자고 쉬고.
템플스테이라는 말보다 마음에 든다.




방 네 칸 짜리 선월당(禪月堂).
그 중에 내가 묵은 방은 정업(正業).
팔정도(八正道) 중 하나이다.

정견():올바로 보는 것.
정사(:):올바로 생각하는 것.
정어():올바로 말하는 것.
정업():올바로 행동하는 것.
정명():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정근(:):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정념():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정정():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간단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나서
템플스테이를 주관하시는 스님에게서 명상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거창할 줄 알았다.
마음을 비워라, 번뇌를 내려놓아라 뭐 이런 말씀을 들을 줄 알았다.

그냥 숨을 쉬란다.
코로 들이쉰 숨이 기도를 거쳐 폐에 이르는 것을
폐에서 나온 숨이 기도를 거쳐 코로 나가는 것을
가만히 느껴보란다.

들숨과 날숨.
호흡의 전부인 이것에 가만히 집중해보라는 것이다.
때로 생각이 흘러들어오거든 그냥 흘러내보내란다.

생각해보니, 가끔 숨도 안쉬고 말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는 일이 숨차고 벅차고 그럴 때가 있었다.
숨을 쉬는 일을 잠깐 잊고 있었을 때인가 보다.

가만히 숨에 집중하는 이 명상을
스님은 '의도적인 멈춤'이라 했다.

마음에 새겼다.




명상법과 간단한 사찰예절을 배우고 나선 사찰안내.
관음전 앞에 서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씀을 들었다.
좋은 일을 한 사람과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있는 것이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알고는 있지만 가끔 사람을 대할 때 잊어먹곤 하는 이 말씀에
계면쩍어져 고개를 슬쩍 왼쪽으로 돌리니
저물어가는 하늘 끝에
처마 끝 풍경과 은행나무, 석탑이 한 데 모여있다.

저녁 공양 시간.
공양간 맞은 편 가마솥들.




저녁공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환한 달이 벌써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부러 발우공양이나 연등만들기 등을 피해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쉬고 싶어서.
저녁공양을 마친 다른 체험형 신청객들이 뭔가를 또 하러 간 사이.
스님과의 차담(茶談)이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둔 차담자리가 참 예쁘다.

스님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먼저 깨달은 스승과 뒤이어 깨달을 스승이란 말씀을 들었다.
시간의 전후가 있을 뿐이란 말이다.

나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내가 자잘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답답함을 참고 기다려준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또 앞으로 깨달아야 할 것들을 기다려 주고 있는 많은 분들께
송구하다.
(여기에는 물론 수많은 책의 저자들이 포함된다.)





차담을 마치고 나서는 취침 전까지 자유.
자리를 펴고 반듯하게 누우니 잠이 밀려왔다.
다인실을 쓰다보니 체험형을 신청한 여러 사람이
제야 타종행사를 비롯하여 늦도록 들락거리는데도
잠을 푹 잤다.
아주 푹 잤다.

아침 공양으로 떡국을 먹고
체험형 신청객들이 해맞이를 한다고
우르르 뒷산으로 올라간 사이.
정수기가 있는 휴월당에 올라가
가져간 텀블러에 커피를 타서 툇마루에 앉고 보니
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뒷산에서 어렴풋이 와~ 하는 함성이 들려오는 사이
나는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며 혼자 해맞이를 했다.

새해 아침부터 횡재.




하산 전까지 남은 자유시간.
경내를 천천히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아침 햇살 속에 다시 마주한 은행나무.

1100년을 살았다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키가 크다는 이 나무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천년을 넘게 살아야지 마음을 먹기는 커녕,
천년이 어떤 세월일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부지런히 땅으로부터 물을 기어올리고
새 잎을 돋우어내고 열매를 맺어 떨구는 일을
멈춰야 할 만큼 큰 화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로
이 나무는 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이 화마와 총탄을 겨우겨우 비켜낸 세월일 뿐이지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닐 터이다.

아래 사진, 밑둥의 옹이는 견뎌낸 아픔을 말한다.
나무가 크다보니 옹이 또한 크다.

큰 나무는 큰 옹이를
작은 나무는 작은 옹이를 가지기 마련이던가.

아프지 않은 삶은 또 어디 있던가.

나무는 천년을 지난 지금,
영생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알 것이다.
나무는 태어난 그날 천년을 준비하지 않았듯이
죽음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다가오는 일을 담담히 맞을 것이다.
새 봄에 묵묵히 또 잎을 피워내며.

죽음 앞에서도 잎을 피워내는 이 나무는
그래서 더 장할 것인지도.



마지막으로 대웅전 앞마당을 한 바퀴 돌다가 눈이 마주친 녀석.
목에 무얼 걸고 있는 것을 보니 절에서 기르는 고양이인 모양이다.
제 앞발을 하염없이 핥아 깨끗이 닦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가 심우도(尋牛圖) 아래이다.

발을 다 닦고 나서는 얼어붙은 대야를 자꾸 핥아대길래
바가지로 약수를 떠다 부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해 숙소로 향하는 길.
부도밭에 햇살이 따스하게 비춘다.
맨 앞의 하얀 부도는 3년 전 조성된 것.
사람이 일생을 통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뤄내야 하는 것을
무어라 딱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길로 정한 것을 묵묵히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산길.
겨울의 본령(本領)을 다한 추위가 찾아와 있었다.

나는 아주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내려왔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느린 걸음이었다.



덧붙이는 영상은 양평 용문사 진각스님의 법고 타고.
(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이 제야의 타종행사를 위해 미뤄지는 대신
진각스님께서 법고를 타고해 주셨다. 시간 맞춰 달려간 덕분에 맨 앞자리에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 )

*출처:https://blog.naver.com/dowldyrrltod/22117685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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